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올해 들어 60% 가까이 폭등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 강화와 국제 정세 불안이 맞물린 결과로, 시장에서는 배출권 가격이 조만간 ‘정상화 궤도’인 2만원 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KAU25, 1만 원대에서 1만 6천 원대로… 상승 동력은?
23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2025년분 할당 배출권인 KAU25의 가격은 t당 1만 6,600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말(1만 400원) 대비 약 59% 급등한 수치다. 올해 초 1만 3,000원대에 머물던 가격은 중동 분쟁이 격화된 2월 말부터 본격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 가격 상승의 핵심 원인으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1. 정부 정책 변화: 올해 시행된 ‘제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에 따라 무상 할당 비중이 줄고 유상할당 비중이 2030년까지 25%로 확대된다. 기업들이 공짜로 받던 배출권이 줄어들면서 시장에서 직접 구매해야 하는 수요가 선반영된 것이다.
2. 에너지 가격 상승: 중동 분쟁으로 화석연료 수급이 불안해지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석탄 발전 가동률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탄소 배출량과 배출권 수요가 동시에 급증했다.
3.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유럽 수출 시 관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는 국내외 배출권 가격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이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현재 유럽 배출권 가격(약 12만 원)에 비해 현저히 낮은 국내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 기업들 ‘희비 교차’… 철강업계 "27조 부담" 우려
배출권 가격 상승은 산업계에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철강·시멘트 등 탄소 다소비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배출권 가격이 t당 4만 원까지 오를 경우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배출권 구매 총액이 약 2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가격 상승이 곧장 생산 원가 부담으로 직결되고 있어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반면, 탄소 감축 기술 및 금융업계에는 새로운 시장 기회가 열리고 있다.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탄소를 적게 배출해 남은 권리를 파는 것이 수익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후시파트너스 박종한 상무는 "가격 상승 기대감으로 배출권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거나 좋은 가격에 팔기 위해 보유하려는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 ‘배출권 외부사업’ 활성화 및 시장 정상화 기대
가격 상승은 지지부진하던 ‘배출권 외부사업’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전망이다. 외부사업은 할당 대상 업체가 외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그 실적(KOC)을 사오는 방식이다.
현대차증권 조기성 책임매니저는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불확실성이 컸던 감축 프로젝트의 경제성이 좋아져 금융 조달(PF)이 원활해지고, 실적을 선점하려는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와 관련 업계는 현재의 상승세를 시장 정상화의 과정으로 보고 있다. 임상준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은 최근 업무보고에서 "최소 2만 원은 돼야 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며 가격 현실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업계 전문가들 역시 현재 1만 6,000원 선을 사실상의 ‘저점’으로 인식하며 향후 추가적인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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