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국제 무역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국경세) 도입을 발표했다.
탄소국경세란, EU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중 역내 생산 제품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EU는 이미 역내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동일한 탄소배출량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역외 경쟁사로부터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유럽의회가 최종 승인하면, 3년간의 시범 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역외국가들이 유로존으로 수출 시 탄소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이 발표한 7월 16일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EU는 연간 50억~140억 유로의 세수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며, 일찍부터 세계를 선도해 온 친환경 기술의 범용성을 확대함으로써 유럽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효과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탄소국경세 도입에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많은 신흥국이 EU가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환경문제 해결 비용을 개도국에 전가하려 한다고 규탄했다. 이들 국가는 EU가 환경문제를 국제 무역에서 불공정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근거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준비 중이다.
EU는 환경문제에 관한 한,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친환경 기술의 보유뿐 아니라, 환경 관련 국제 표준 선정과 제도화에 있어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 따라서 탄소국경세의 시행으로 단순 세수 확보 차원을 넘어 침체한 유럽 제조업 및 경제 부흥을 꾀한다는 주장도 무리가 아니다.
탄소국경세 도입은 전략‧안보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현재 EU는 미국과의 공조 속에서 인권 및 기후변화 문제를 들고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도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탄소배출량이 높은 철강‧알루미늄‧석탄‧석유 등의 수출 비중이 높은 러시아는 단기적으로는 원자재 가격 하락 위험에, 장기적으로는 원자재 수요 둔화 및 탈탄소 산업구조로의 재편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지구 온실가스 증가로 인한 폭우‧폭염 등 이상기후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국내외적으로 인권에 대한 강조가 제고되고 있기에 중국과 러시아는 명분 싸움에서도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더욱이 EU가 노동인권‧환경보호 규정을 명문화해 무역대상국에 시행을 요구할 경우, 대상국으로서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해당 조치를 따를 수밖에 없다. EU의 탄소국경세 부과가 단순히 환경문제가 아닌, 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시도로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2025년까지 미국에도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비롯해 화석에너지 위주의 기존 정책 기조에서 탈피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표명했다. 이를 위해 먼저 2035년까지 발전 부문에서의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기존 확충 속도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2030년까지 육상풍력을 100% 확장하고, 연방 국유지의 조림 및 육상풍력 프로그램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농업 부문의 기후변화 핵심 대안으로 바이오 연료 생산도 대폭 늘릴 예정이다. 아울러 친환경 에너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투자세액공제‧생산세액공제 등의 투자유인제도, 친환경 차 보급 확대를 위한 기업평균연비규제제도도 강화하고 있다. 건물 부문에서는 신축 및 재개발을 통한 에너지효율 개선을 꾀하고 있다.
그 속내야 어찌 됐건 중국 역시 EU와 미국의 움직임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20년 9월 제75차 유엔대회 연설에서 중국의 ‘30‧60’ 계획을 선포했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 정점을 찍는 탄소피크를 달성하고, 이후 점진적으로 탄소배출량을 감소해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룩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전기차‧수소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2021년 1월 1일부터 고철 폐기물 전면 수입 금지, 일부 지역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면봉‧발포 플라스틱 식기 생산 및 판매 금지 등을 시행했다. 더불어 수소차 등 신에너지 차에 대한 취득세 감면 혜택을 2022년 말까지 연장했으며, 지난 7월 16일에는 전국 단일의 탄소배출권 거래제(ETS)를 공식 출범시킴으로써 세계 최대의 탄소 시장을 개장했다.
이처럼 EU, 미국, 중국을 주축으로 친환경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그러나 단순히 환경오염 극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안보 측면의 문제가 광범위하고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만큼, 향후 경쟁은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조은정 연구원은 “EU의 탄소국경세 도입은 단순히 EU와의 교역에서의 무역수지 악화에 그치지 않고 ‘게임의 룰’ 변경을 통한 세계무역 질서 재편까지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은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화두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다”면서, “이들의 시선은 미래 차 시장의 선점을 넘어 미래 공급망의 재구축과 세계무역 질서의 재편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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