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국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제도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공시체계를 구축하되 기업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 도입과 충분한 준비기간 확보를 병행하는 방향이 핵심으로 제시됐다.
금융위원회는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ESG 금융추진단」 제6차 회의를 개최하고, 관계부처와 산업계·투자자·전문가 등과 함께 ESG 공시 기준 및 로드맵 주요 쟁점을 집중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는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재정경제부,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획예산처, 중소벤처기업부 등 관계부처와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한국경제인협회·중소기업중앙회 등 산업계, 국민연금공단·은행연합회 등 투자자, 학계·전문가 및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회계기준원 등 유관기관이 대거 참석했다.
“투자자 신뢰 회복…이제는 질적 성장 고민할 시점”
권대영 부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지난해 우리 자본시장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높아지며 투자자 신뢰가 회복되고 있다”며 “이제는 자본시장의 질적 고도화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제도 기반을 함께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11월 ‘2035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수립된 가운데 주요국이 ESG 공시 제도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국내 역시 명확한 공시 로드맵을 마련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초기 제도 도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하고, 시행 시기와 범위 등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균형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제시됐다. 또한 정책금융기관과 협력해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고,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 등 전환금융 체계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IFRS 기반 공시기준 최종안 공감대…핵심 쟁점은 ‘스코프3’
회의에서는 회계기준원이 마련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최종안 주요 내용이 공유됐다. 해당 기준은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IFRS 재단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기반으로 2024년 4월 초안이 공개된 이후 지속적인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된 것이다. 참석자들은 최종안의 전반적 방향에 대해 대체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큰 쟁점은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 범위, 특히 공급망 배출을 포함하는 ‘스코프3’ 공시 여부였다. 산업계는 광범위한 공급망을 고려할 때 측정과 추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공시 제외 필요성을 제기했다. 반면 스코프3를 제외할 경우 배출량이 많은 공정이 공시 대상에서 빠져 형식적 공시에 그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스코프3를 공시 범위에 포함하되 적용 시기는 즉시 확정하지 않고 로드맵 논의를 통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준 정합성과 기업 부담 완화를 동시에 고려한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대기업부터 단계적 의무공시…초기엔 거래소 공시 방식 검토
ESG 공시 의무화 로드맵과 관련해서는 EU와 일본 등 주요국 사례를 참고해 역량이 충분한 대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의무공시를 추진하는 방향이 논의됐다. EU는 2025년부터 대기업 공시를 시행 중이며, 2028년 이후 공시 대상 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도 2027년부터 시가총액 3조 엔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공시를 시작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초기에는 기업 부담과 제재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거래소 공시 형태로 시행하고,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된 이후 법정 공시로 전환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공시 경험을 축적하고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공시 시기 두고 의견 분분…“속도 vs 준비기간” 균형 모색
최초 의무공시 도입 시기와 스코프3 적용 유예기간을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글로벌 기준과 보조를 맞춰 공시 도입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중소·중견 협력업체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맞섰다.
특히 공급망 전반의 데이터 관리와 공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만큼 관계부처가 협력해 관련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기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4월까지 로드맵 확정…기업 지원 워킹그룹 가동
금융위원회는 이날 논의를 바탕으로 ESG 공시 기준 최종안과 로드맵 초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한 뒤 이달 말 ‘생산적 금융을 위한 대전환 회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후 공개 의견수렴을 거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4월까지 최종 로드맵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공시 제도 안착을 지원하기 위해 관계기관과 공동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기업들의 공시 이행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정책 지원을 병행할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열린 자세로 시장 의견을 수렴해 ESG 공시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겠다”며 “국내 자본시장의 신뢰 제고와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 확산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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