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스턴에서 약 50km 떨어진 매사추세츠주 산업단지에서 인류 에너지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핵융합 스타트업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스(Commonwealth Fusion Systems, CFS)’가 태양과 같은 에너지를 지구에서 구현하기 위한 핵융합 발전 장치 시제품을 실제로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미국은 향후 10년 내 사실상 무한하고 탄소 배출이 없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다.
뉴욕타임즈 19일(현지시간) 보도에 의하면 CFS가 조립 중인 도넛 모양의 장치는 ‘토카막(tokamak)’으로 불린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장치는 태양계에서 가장 뜨겁고 동시에 가장 차가운 공간이 공존하는 극한의 설비다. 내부에서는 섭씨 1억 도에 달하는 플라즈마 상태에서 원자들이 충돌·융합하고, 그 바깥은 절대영도에 가까운 극저온 환경과 지구 자기장의 40만 배가 넘는 초강력 자기장이 이를 감싼다.
핵융합은 두 개의 원자를 결합시켜 에너지를 얻는 방식으로, 원자를 쪼개는 기존 핵분열 발전과는 정반대다. 이론적으로는 훨씬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방사성 폐기물 문제나 대형 사고 위험이 거의 없다. 연료 역시 바닷물에 풍부한 중수소와 리튬에서 얻는 삼중수소로, 자원 제약이 적다.
CFS가 개발 중인 토카막 ‘SPARC’는 석탄이나 천연가스보다 최대 1천만 배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면서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장 큰 난제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가두고, 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끌어내는 ‘순에너지(net energy)’를 달성하는 것이다.
국제 핵융합 산업협회(Fusion Industry Association)의 앤드루 홀랜드 CEO는 “다음 단계의 장치를 만들면 순에너지를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가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며 “관건은 얼마나 빨리 그 장치를 구축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CFS의 일정은 과감하다. 민간 자본 20억 달러 이상을 유치한 이 회사는 2030년대 초 버지니아주에 세계 최초의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과학책임자인 브랜든 소봄은 이를 “지구와의 경주”라고 표현했다. 기후위기 대응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등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신기술 확산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쟁은 미국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역시 대규모 핵융합 시설을 건설 중인 것으로 위성사진을 통해 포착되며, 기술 패권 경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는 최근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중국이 핵융합 발전소를 짓고 있다”며 “세계 전력 생산을 선도하기 위한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핵융합이 ‘가장 안전한 원자력’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플라즈마는 극도로 불안정해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사라진다. 소봄은 “플라즈마에 바람 한 번 불어도 반응은 즉시 꺼진다”며 “후쿠시마나 체르노빌처럼 통제 불능의 연쇄 반응은 일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SPARC의 또 다른 강점은 크기다. 완공 시 높이 약 9m로, 22층 건물 규모의 프랑스 ITER 실험로에 비해 훨씬 작다. 이는 향후 상업용 발전소에 적용하기 유리하다는 의미다. CFS는 고온초전도 자석에 특수 금속 테이프를 적용해 기존 통념이던 ‘대형 토카막이 더 강력하다’는 공식을 깨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술적 위험도 지적한다. 컬럼비아대 핵융합·플라즈마 물리학자 제리 나브라틸 교수는 “전례 없는 영역으로 기술을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위험이 따른다”며 “자석과 구조물이 플라즈마에서 방출되는 에너지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자석 기술이 성공적으로 입증된다면 핵융합 분야에 중대한 진전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기술 외에도 공급망 문제가 남아 있다. 핵융합 연료인 삼중수소 생산을 위해서는 리튬 확보가 필수적이다. 미 에너지부 핵융합에너지과학국의 장폴 알랭 국장은 “리튬 자원 접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으며, 중국은 이미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 공급망을 선점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석유·가스 기업들조차 핵융합에 투자하고 있다. 홀랜드 CEO는 “핵융합은 에너지를 자원과 날씨로부터 분리해 ‘제조 가능한 것’으로 바꾼다”고 평가했다. 소봄 역시 “핵융합은 기존 에너지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모두를 위한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핵융합을 ‘다음 문명의 동력’으로 본다. 아직 상업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보스턴 인근에서 실제로 건설 중인 이 작은 토카막은 인류 에너지사의 거대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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