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들이 오랫동안 전자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던 ‘양자 홀 효과(Quantum Hall Effect)’를 빛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전자기적 힘에 반응하지 않는 광자(빛의 입자)가 전자와 동일한 양자 규칙을 따를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로, 향후 정밀 계측, 양자정보 기술, 광자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공동 연구진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지난달 5일 물리학 학술지 Physical Review X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빛 자체가 양자화된 단계적 이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다.
고전 물리에서 시작된 ‘홀 효과’
홀 효과(Hall effect)는 19세기 말 발견된 물리 현상이다.
전류가 흐르는 물질에 전류 방향과 직각으로 자기장을 가하면, 물질의 양쪽 측면에 전압이 형성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전류를 운반하는 음전하를 띤 전자가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한쪽 방향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도체의 한쪽 가장자리에는 전자가 축적되어 음전하가 모이고, 반대편에는 상대적으로 양전하가 형성된다. 이러한 전하 분리 때문에 물질의 양쪽 측면 사이에 측면 전압(횡전압) 이 나타난다.
이 전압은 매우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홀 효과는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활용되어 왔다.
▲ 자기장의 세기 측정
▲ 반도체의 도핑(doping) 수준 분석
▲ 전자 이동 특성 연구
즉, 홀 효과는 현대 전자공학과 재료과학의 핵심 측정 도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등장한 ‘양자 홀 효과’
그러나 1980년대 초, 물리학자들은 이 현상이 양자 수준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극저온 환경에서 매우 얇은 전도체—거의 종이 두께 수준의 2차원 전자 시스템—를 실험했다. 여기에 매우 강한 자기장을 가하자 예상과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기존 홀 효과에서는 자기장이 강해질수록 측면 전압이 연속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는 전압이 연속적으로 증가하지 않고 계단 형태로 증가했다.
즉, 전압 값이 특정 구간에서는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다음 단계로 뛰어오르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 평평한 구간은 ‘플래토(plateau)’ 라고 불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값들이 물질의 종류나 구조와 무관하게 동일하다는 점이었다.
플래토 값은 오직 다음 두 가지 자연 상수에 의해 결정된다.
▲전자 전하 ▲프랑크 상수
이 발견은 물리학의 근본 법칙과 연결된 중요한 현상으로 평가되었고, 이후 다음과 같은 노벨 물리학상으로 이어졌다.
1985년 : 양자 홀 효과 발견
1998년 : 분수 양자 홀 효과 발견
2016년 : 위상 물질(topological matter) 연구
양자 홀 효과는 이후 정밀 계측과 표준 단위 정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빛에서는 왜 불가능했나
그동안 양자 홀 효과는 거의 항상 전자 시스템에서만 관측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자에는 전기적 전하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는 전기장이나 자기장의 영향을 받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광자(빛) 는 전기적 전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즉, 자기장에 의해 직접적으로 밀리지 않고 전기장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빛에서 양자 홀 효과를 구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빛의 ‘양자화된 이동’ 첫 관측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국제 연구진은 이 문제를 극복했다.
연구진은 특수하게 설계된 광학 구조를 이용해 빛이 이동하는 경로를 정밀하게 제어했다. 이 시스템에서는 빛의 주파수와 공간 구조가 결합된 독특한 광자 위상 구조(topological photonic structure) 가 형성된다.
이 환경에서 연구진은 놀라운 현상을 관측했다.
빛이 단순히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전자처럼 일정한 단계로 횡방향 이동하는 현상, 즉 ‘양자화된 드리프트(quantized drift)’ 가 나타난 것이다.
연구 공동 저자인 몬트리올대학교 물리학 교수 필리프 생장(Philippe St-Jean) 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빛이 전자처럼 양자화된 단계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강한 자기장에서 전자가 보이는 양자 홀 효과와 유사한 보편적 패턴을 따릅니다.”
정밀 계측 분야의 혁신 가능성
이 발견은 단순한 기초 물리학 성과를 넘어 정밀 계측(metrology) 분야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재 양자 홀 효과는 전기 저항의 국제 표준을 정의하는 데 사용된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킬로그램 단위 정의는 단순한 물리적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자연 상수에 기반한 정밀 계측 장치를 통해 결정된다.
필리프 생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늘날 킬로그램은 전류와 질량을 비교하는 전자기계 장치를 통해 정의됩니다. 이 전류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보편적인 전기 저항 기준이 필요합니다.”
양자 홀 효과에서 나타나는 플래토 값은 바로 그 기준을 제공한다.
이 덕분에 세계 각국은 동일한 물리 상수에 기반한 동일한 질량 정의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진은 향후 광학 기반 양자 홀 효과가 이러한 전자 기반 표준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한다.
양자 컴퓨터와 초정밀 센서로 확장
빛에서 양자 홀 효과가 구현되면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도 응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1. 양자 광자 컴퓨터
빛의 이동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오류에 강한 광자 기반 양자 컴퓨터 개발이 가능해질 수 있다.
2. 양자 정보 처리
빛은 이미 양자 통신과 양자 네트워크의 핵심 매체로 연구되고 있다.
양자 위상 구조를 이용하면 정보 전달의 안정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3. 초고감도 센서
완벽한 양자화에서 아주 작은 편차만 발생해도 환경 변화가 감지될 수 있다. 즉,▲온도 변화 ▲진동 ▲외부 전자기 교란 등을 감지하는 초정밀 센서 개발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광자 기술의 새로운 시대
연구진은 이번 실험이 매우 어려운 기술적 도전이었다고 설명한다.
빛은 전자와 달리 열역학적 평형 상태에 있지 않은 시스템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양자 현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밀한 제어가 필요하다.
필리프 생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빛에서 양자화된 이동을 관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광자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비평형 상태에 있기 때문에 빛의 생성과 조작, 안정화를 모두 정밀하게 제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광자 기반 위상 물질(topological photonics) 연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에서 빛으로”…양자 물리의 새로운 확장
이번 발견은 양자 물리학의 적용 범위가 전자에서 광자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빛이 전자와 동일한 양자 규칙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다음과 같은 새로운 연구 분야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 위상 광학(topological photonics)
▲ 광자 기반 양자 컴퓨팅
▲ 차세대 정밀 계측 기술
▲ 초고감도 양자 센서
연구진은 이번 성과가 정보를 전달하고 처리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광자 기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물리학에서 오랫동안 전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양자 홀 효과가 이제 빛에서도 구현되면서, 양자 과학의 경계는 또 한 번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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