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다양성 훼손을 보상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구매하는 ‘생물다양성 크레딧(biodiversity credits)’이 자연 복원 사업에 일정한 재정적 기여를 할 수 있지만, 단독으로는 대규모 생태계 회복을 지원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Conservation Bi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자발적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이 황폐화된 토지를 재야생화(rewilding)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탄소 크레딧과 같은 다른 자연 복원 금융 수단과 결합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자금 조달 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자연 훼손 보상 위한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
생물다양성 크레딧은 자연 훼손을 줄이거나 복원하려는 프로젝트가 자연 복원 성과를 금융 자산으로 전환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개인이나 기업 투자자가 자연에 미친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이 크레딧을 구매하면, 그 자금이 생태 복원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일부는 토지 소유자에게 수익으로 돌아간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80여 개 중개 기관이 이러한 자발적 생물다양성 크레딧 거래를 지원하며, 자연 복원 프로젝트에 새로운 투자 자금을 제공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영국 농지 재야생화 사례 분석
이번 연구는 영국 농지에서 재야생화가 이루어질 경우 얻을 수 있는 생물다양성 증가 효과를 정량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생물다양성 크레딧의 경제적 가치를 계산한 첫 연구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영국 두 지역의 농지를 비교 분석했다.
하나는 전통적인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링컨셔(Lincolnshire)의 부스비(Boothby) 농장, 다른 하나는 지난 20년간 재야생화가 진행된 웨스트서식스(West Sussex)의 크네프(Knepp) 농장이다.
조사 결과, 재야생화가 진행된 크네프 농지는 일반 농지보다 약 두 배 높은 생물다양성을 보였다. 또한 생태계 기능도 개선되어 수분 곤충 종은 33% 증가, 유익한 토양 균류는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부스비 농장이 재야생화를 진행할 경우 30년 동안 생물다양성이 69~92%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크레딧 가치 150만 파운드… 실제 비용은 15배
연구팀은 국제적으로 활용되는 월라세아 트러스트(Wallacea Trust) 프레임워크를 적용해 크레딧 가치를 계산했다. 이 기준에서는 토지 1헥타르에서 생물다양성이 1% 증가할 때 1개의 크레딧으로 계산된다.
이 방식으로 계산할 경우, 부스비 농장의 재야생화로 창출되는 생물다양성 크레딧의 총 가치는 약 150만 파운드(약 25억 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토지 관리, 모니터링 등 복원 비용을 포함한 총 비용은 이보다 약 15배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즉 자발적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만으로는 자연 복원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연구를 주도한 시슬리 마셜(Cicely Marshall) 박사는 “생물다양성 크레딧은 탄소 크레딧과 같은 다른 자연 보호 금융 방식과 결합될 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토지의 생물다양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개선될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크레딧 가치 산정에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자연 복원 금융의 새로운 조합 필요
영국은 특히 농업 집약화로 인해 토지 이용 변화와 서식지 파괴가 심각하게 진행되면서 자연 생태계가 크게 훼손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재야생화는 농지를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 상태로 되돌려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방식으로, 주변 농업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연구팀은 생물다양성을 조사하기 위해 DNA 메타바코딩(DNA metabarcoding) 기술을 활용해 곤충, 토양 생물, 균류 등 다양한 생물 종을 정밀 분석했다.
연구진은 또한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생물다양성 순증가(Biodiversity Net Gain)’ 제도도 함께 분석했다. 이 제도는 개발 사업자가 훼손한 자연을 보상하기 위해 최소 10% 이상의 생물다양성 개선을 보장하도록 요구한다.
이 기준을 적용해 계산할 경우, 부스비 농장을 자연 서식지로 복원했을 때 30년 동안 최대 6900만 파운드(약 1,200억 원)의 경제적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모든 크레딧이 시장에서 판매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수치다.
마셜 박사는 “기업들이 자연 훼손을 보상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투자자와 자연 보호 프로젝트 모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생물다양성 지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자연 복원 금융이 탄소 크레딧, 생물다양성 크레딧, 공공 재정을 결합하는 복합적 구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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