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을 거꾸로 매달린 채 날아다니며 길을 배운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 독특한 학습 방식이 박쥐 세계에서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제학술지 Current Biolog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일부 박쥐 종은 어미가 새끼를 등에 태운 채 반복적으로 이동시키며 ‘공중 항법 교육’을 수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를 주도한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의 행동생태학자 아야 골드슈타인과 이스라엘 텔아비브대의 리 하르텐 연구팀은 이집트과일박쥐(Egyptian fruit bat)를 대상으로 장기간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이 종의 새끼는 태어난 후 약 3주 동안 어미 몸에 완전히 밀착된 채 생활하며, 어미가 먹이를 찾기 위해 비행하는 동안에도 발과 턱으로 몸을 붙들고 함께 이동한다. 심지어 성장한 이후에도 체중이 어미의 40%에 달하는 시기까지 이러한 ‘동반 비행’이 이어진다.
그동안 과학계에서는 왜 일부 박쥐가 새끼를 동굴에 두지 않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함께 비행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에 연구진은 텔아비브 인근 동굴에서 어미와 새끼 박쥐를 포획해 각각 소형 GPS 장치와 무선 송신기를 부착한 뒤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연구 초기, 과학자들은 이상한 현상을 반복적으로 목격했다. 야간 비행 중 어미와 새끼의 신호가 갑자기 분리되며, 새끼의 이동이 멈추는 패턴이 지속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연구진은 처음에는 장비 오류나 추적 실패로 판단했으나, 수집된 GP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혀 다른 사실이 드러났다.
어미 박쥐가 의도적으로 새끼를 나무에 ‘내려놓고’ 사냥을 떠났던 것이다.
연구진은 이 행동을 “무인 보육(drop-off)” 전략으로 정의했다. 어미는 밤이 시작되면 새끼를 등에 태우고 동굴을 떠나 특정 나무로 이동한 뒤, 그곳에 새끼를 남겨둔다. 이후 먹이 활동을 하면서도 여러 차례 해당 나무를 다시 찾아와 새끼에게 젖을 먹이거나 체온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밤이 끝나면 다시 새끼를 데리고 동굴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어미가 동일한 나무 또는 제한된 몇 개의 나무를 반복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새끼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동굴 가까운 나무로 ‘하차 지점’을 이동시키는 경향도 관찰됐다. 이는 새끼의 체중 증가와 비행 부담을 고려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새끼 박쥐의 독립 시점에서 확인됐다. 약 10주가 지나 어미가 더 이상 새끼를 동반하지 않으면, 새끼는 처음으로 단독 비행에 나선다. 이때 수천 개의 나무가 존재하는 환경에서도, 새끼는 정확히 자신이 이전에 내려졌던 나무로 곧장 날아간다. 이후 이 나무를 출발점으로 삼아 점차 활동 범위를 확장한다.
연구진은 “새끼가 어미의 배에 매달린 상태로 이동하면서 주변 환경을 학습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각 정보와 청각적 반향정위(에코로케이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이집트과일박쥐는 혀를 이용한 클릭 소리로 반향정위를 수행할 수 있어, 비행 중 공간 정보를 지속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번 연구는 박쥐의 모성 행동이 단순한 보호를 넘어 적극적인 ‘교육’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독일 베를린 자연사박물관의 행동생태학자 미르얌 크뇌른실트는 “어미가 새끼의 방향 감각 형성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는 결과”라며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직접 비행하지 않고도 경로를 기억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번 발견은 동물의 공간 인지 능력과 학습 메커니즘에 대한 기존 이해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간과 달리 시야가 제한된 상태에서 이동하는 동물이 어떻게 환경을 기억하고 재구성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연구진은 이번 성과가 단순한 행동 관찰을 넘어, 동물의 학습과 기억,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결합된 복합적 진화 전략을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어미 박쥐는 단순히 새끼를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존에 필수적인 공간 정보를 전달하는 ‘교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어둠 속 비행이라는 극한 환경 속에서도, 박쥐는 세대를 넘어 지식을 전수하는 독특한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동물 행동학뿐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 항법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도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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