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전쟁,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이란의 물 공급 체계가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 물 부족 국가인 이란은 장기 가뭄과 과도한 지하수 개발, 비효율적 농업용수 사용, 도시 집중, 노후 인프라 문제에 더해 최근 분쟁으로 핵심 수자원 시설까지 위협받으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이른바 ‘물 데이 제로(water day zero)’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Carbon Brief는 13일자 해설 기사에서 이란의 물 위기가 단순한 기후문제를 넘어 전쟁과 거버넌스 실패가 중첩된 복합 위기라고 진단했다.
이란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물 스트레스가 심한 국가군에 속하며, 최근까지 전례 없는 다년 가뭄을 겪어왔다. 특히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타브리즈, 마슈하드 등 주요 도시의 식수 공급을 담당하는 댐들이 2025년 말 기준 위험 수준까지 떨어졌다는 경고가 나왔다. ‘데이 제로’는 도시 상수도가 고갈돼 수도 공급을 중단하거나 배급제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을 뜻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 강우로 즉각적 위기는 다소 완화됐지만, 이란 전역의 많은 지역이 이미 사실상 ‘물 파산(water bankruptcy)’ 상태라고 지적한다.
이란의 위기는 기후변화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는 이란의 고온·건조 조건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기상특성(WWA)은 2025년 11월 발표에서 2021~2025년 이란과 유프라테스-티그리스 유역의 5년 가뭄이 인간 유발 기후변화로 더 심해졌다고 밝혔다. 이 분석은 인위적 기후변화가 가뭄 위험을 10배 이상 키웠다는 강한 증거가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기상기구(WMO)도 아랍 지역의 기온 상승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가장 물 부족이 심한 지역 중 하나에서 가뭄이 더 잦고 심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인간의 정책 실패가 꼽힌다. 이란은 오랜 기간 전통 지하수 공급 체계인 카나트(qanat)를 약화시키고, 대규모 댐과 과잉 양수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물 관리를 전환해 왔다. 농업은 이란 전체 물 사용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식량 자급을 중시하는 정책 아래 관개농업이 과도하게 확대되면서 지하수 고갈이 심화됐다. Carbon Brief가 인용한 연구들에 따르면 이란은 2000년대 이후 대규모 대수층 고갈과 지반침하를 겪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회복이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결국 이란의 물 위기는 기후충격 위에 누적된 구조적 남용의 결과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최근 전쟁은 이 취약한 시스템을 더 흔들고 있다. 2026년 3월 초 호르무즈 해협의 케슘섬 담수화 시설이 공격받았다고 이란이 주장했고, 바레인 역시 자국 담수화 시설이 드론 공격으로 손상됐다고 밝혔다고 Carbon Brief는 전했다. 이란은 담수화 의존도가 걸프 소국들보다 낮지만, 이미 가뭄과 저수지 감소, 전력·공급망 불안이 누적된 상황이어서 담수화 시설이나 전력망, 송배수망이 흔들리면 국지적 물 부족이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분쟁이 이란 내부의 취약한 물 시스템에 추가 충격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걸프 지역 전체로 보면 파장은 더 클 수 있다. 중동은 전 세계 담수화 생산의 약 40%를 차지하는 핵심 지역이며, 쿠웨이트·카타르·오만 같은 국가는 식수의 대부분을 담수화에 의존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시설이 공격받으면 단순한 식수 부족을 넘어 위생 시스템, 보건, 산업 활동, 식량 생산까지 연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WMO도 물 부족과 기후위기가 중첩되는 지역에서 회복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데이 제로’를 피하려면 기술보다 정책 우선순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핵심 처방은 농업용수 과소비를 부추기는 보조금 축소, 물 집약적 경작 축소, 처리수 재이용 확대, 누수 저감, 지하수 취수 규제 강화, 물 생산성 향상 등이다. 다시 말해 더 많은 물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한계를 넘어선 소비 구조를 줄이고 관리 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뜻이다. 전쟁은 이란의 물 위기를 만들지 않았지만, 이미 임계점에 가까운 시스템이 무너지는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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