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밑바닥에 사는 해면은 유리로 만들어진 가느다란 수염에 의해 바닥에 붙어 있다. 이 해면은 수염을 통해 바닥으로부터 빛을 수집해 다른 해면에게 반사한다.
미국의 조애나 아이젠버그 연구팀은 2004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3월 9일자에 해면 수염의 빛 전달능력이 광통신기술에 활용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심해 생물의 특성을 활용한 광학 기술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한 환경 적응한 비너스의 꽃바구니 해면
태평양 수심 3000m 밑바닥에 서식하는 '비너스의 꽃바구니'(Venus' flower basket)라 불리는 해면은 바구니처럼 생긴 수염다발로 깊은 바다 바닥에 부착해 생존한다. 이 해면의 골격에 있는 이중격자(double lattice) 구조는 극한의 수압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놀라운 경직성과 충격흡수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해면의 학명은 에우플렉텔라 아스페르질룸(Euplectella aspergillum)으로, 실리카로 구성된 골격이 특징이다. 연구진은 이 해면의 골격 구조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빛 전달 시스템으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물모방 격자시스템 개발
호주 로열멜버른공대(RMIT) 연구팀은 비너스의 꽃바구니 해면의 이중격자 골격 구조를 모방한 생물영감 격자시스템(BLS: bio-inspired lattice system)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해면의 미세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공학적으로 재현한 결과물이다.
RMIT 연구팀의 수석 연구원인 마이클 탐슨 교수는 "자연은 수십억 년 동안 최적의 구조를 개발해왔으며, 우리는 이러한 자연의 지혜를 공학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팀은 2025년 국제 학술지 '컴포지트 스트럭처'(Composite Structure) 1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BLS가 기존 건축 재료보다 경직성이 13배 높고 충격 에너지를 10% 더 효율적으로 흡수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특성은 BLS가 경량화된 초강력 건설소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 가능성
생물영감 격자시스템의 개발은 건축 및 토목 공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에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층 건물, 교량, 우주 구조물 등 강도와 가벼움이 동시에 요구되는 분야에서 혁신적인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이 기술은 고층 건물의 내진 설계에 특히 유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우주 산업에서도 가볍고 견고한 구조물을 요구하는데, BLS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공동 연구자인 사라 김 박사는 설명했다.
또한 해면의 빛 전달 능력에서 영감을 얻은 광통신 기술은 더 효율적인 데이터 전송 시스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젠버그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해면의 실리카 구조는 광섬유와 유사한 방식으로 빛을 전달하지만, 더 유연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용화 전망
연구팀은 현재 BLS의 대량 생산 방법을 개발 중이며, 향후 2-3년 내에 건설 산업에 시범 적용할 계획이다. 마이클 탐슨 교수는 "초기 단계에서는 비용이 다소 높을 수 있지만, 생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경제성도 확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RMIT 연구팀은 다른 해양 생물들의 구조적 특성도 연구하고 있으며, 다양한 생물모방 소재 개발을 위한 국제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생물모방 기술의 미래
이번 연구는 생물모방 기술(Biomimicry)이 미래 소재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한다. 자연이 수억 년에 걸쳐 최적화한 구조와 시스템을 분석하고 이를 현대 기술에 접목하는 접근법은 지속가능한 혁신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생물모방연구소의 자넷 패린 소장은 "자연은 우리의 가장 뛰어난 선생님이자 실험실"이라며, "심해 생물에서부터 사막의 식물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인류가 직면한 많은 공학적 문제들을 이미 해결해 놓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해양 생물학, 재료 과학, 건축 공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자료 제공 :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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