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표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해양 폭염(Marine Heatwave)’이 열대성 저기압의 위력을 크게 키우고, 경제적 피해도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해양 폭염 위를 지나며 급격히 강해진 태풍·허리케인·사이클론은 더 강한 바람과 더 많은 비를 동반해 해안 지역에 막대한 피해를 남기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발표됐으며, 1981년부터 2023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 약 800건의 경제 피해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해안 지역의 인구 밀도와 건축물 규모 등 개발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해양 폭염의 영향을 받으며 급격히 강해진 폭풍은 그렇지 않은 폭풍보다 경제적 피해가 93% 더 컸다고 밝혔다.
열대성 저기압은 따뜻한 바다 위에서 형성되는 강한 폭풍으로, 중심부의 저기압과 강풍이 특징이다. 발생 지역에 따라 허리케인, 태풍, 사이클론 등으로 불린다. 이들 폭풍은 상륙할 경우 강풍, 집중호우, 폭풍해일을 일으키며 막대한 피해를 남긴다.
연구진은 특히 ‘급속 강화(Rapid Intensification)’ 현상에 주목했다. 이는 24시간 안에 지속풍속이 최소 30노트(약 시속 55km) 이상 증가하는 경우를 뜻한다. 바닷물 온도가 높고, 대기 중 습도가 높으며, 고도별 바람 차이인 ‘윈드시어’가 약할 때 급속 강화가 잘 나타난다.
해양 폭염은 이런 급속 강화를 촉진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연구에 참여한 Hamed Moftakhari 교수는 “해양 폭염은 폭풍에게 거대한 주유소 같은 역할을 한다”며 “폭풍이 뜨거운 바다 위를 지나면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International Best Track Archive for Climate Stewardship 자료를 활용해 1981~2023년 동안 육지에 상륙한 열대성 저기압 1,600건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경제 피해 자료와 연결 가능한 789건을 선별한 뒤, 해양 폭염 여부와 급속 강화 여부를 비교했다.
그 결과, 급속 강화가 일어나지 않은 폭풍의 평균 최대 풍속은 약 40노트(시속 74km)였지만, 급속 강화된 폭풍은 평균 약 80노트(시속 148km)에 달했다. 특히 해양 폭염의 영향을 받은 급속 강화 폭풍은 상륙 전 며칠 동안 더 높은 풍속을 유지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를 이끈 소헤일 라드파(Soheil Radfar) 박사는 “허리케인 피해는 상륙 순간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시작된다”며 “상륙 4~5일 전 높은 풍속이 지속되면 더 큰 폭풍해일과 해안 침수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수량도 차이를 보였다. 급속 강화된 폭풍은 그렇지 않은 폭풍보다 훨씬 많은 비를 뿌렸으며, 해양 폭염 영향을 받은 급속 강화 폭풍이 상륙 시점에 가장 높은 평균 강수량을 기록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폭풍은 해안 지역 침수, 산사태, 기반시설 붕괴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다네자 마렌(Daneeja Mawren) 박사는 “이번 연구는 해양 폭염이 어떻게 폭풍의 강풍과 폭우를 증폭시키는지 세계적 규모에서 보여준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해저 깊은 곳의 열 축적이나 해류 소용돌이 같은 요인도 폭풍 강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 피해 분석에서도 차이는 뚜렷했다. 연구진은 위성 자료를 활용해 지역별 건물 면적과 높이를 반영한 ‘건축물 부피(Built-up Volume)’를 계산했고, 비슷한 개발 수준의 해안 지역끼리 비교했다. 그 결과, 해양 폭염 속에서 급속 강화된 폭풍은 그렇지 않은 폭풍보다 평균 93% 더 큰 경제적 손실을 남겼다.
실제로 연구진은 1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남긴 해양 폭염 영향 폭풍이 71건에 달한 반면, 해양 폭염 영향을 받지 않은 폭풍 가운데 같은 규모의 피해를 낸 사례는 45건에 그쳤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기후변화로 해양 폭염이 더욱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재난 대응과 기후 적응 전략에서도 이를 핵심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나단 린 교수는 “도시 계획과 방재 시스템은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되는 만큼, 미래의 불확실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연구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더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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