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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경제

도시 속 ‘벌의 정원’이 들려주는 생물다양성의 경고와 희망

미국 유타 레드뷰트가든, 벌 생태조사 통해 도시 생태계 회복 가능성 제시

도시 속 ‘벌의 정원’이 들려주는 생물다양성의 경고와 희망
벌의 다양성이 곧 도시 생태계 건강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벌의 다양성이 곧 도시 생태계 건강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미국 유타주의 한 도심 정원이 생물다양성과 도시 생태계 회복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화려한 꽃과 산책길로 유명한 레드뷰트가든(Red Butte Garden and Arboretum)이 사실은 수백 종의 벌과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하는 ‘도시 속 생태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진은 벌의 다양성이 곧 도시 생태계 건강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라고 강조하며, 도시 공간 설계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100에이커 안에 유타 벌 종의 10%가 산다”

레드뷰트가든은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인근 와새치산맥(Wasatch Mountains) 기슭에 위치한 대표적 도시 정원이다. 많은 시민에게는 도심 속 휴식 공간이지만, 생태학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장소다.

레드뷰트가든 보전·연구 책임자인 사라 히너스(Sarah Hinners)는 현재 이곳의 벌 생태계를 다시 조사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앞서 2015년 실시된 생물다양성 조사에서는 레드뷰트가든 내부에서만 무려 130종의 벌이 확인됐다. 이는 유타주 전체에서 알려진 벌 종의 약 10%에 해당하는 수치다. 단 100에이커(약 40만㎡) 규모의 공간에서 이 정도 다양성이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히너스는 “벌의 다양성은 생태계 건강성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지표 가운데 하나”라며 “와새치산맥과 오커산맥(Oquirrhs) 사이에서 벌에게 가장 이상적인 서식지를 꼽는다면 단연 레드뷰트가든”이라고 말했다.

도시 생태학이 주목하는 ‘벌의 신호’

히너스는 도시생태학자(urban ecologist)로, 인공 환경 속에서 생물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번 연구가 단순히 벌 목록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특정 벌 종이 도시 밖에서 사라지는 이유, 도시 공간의 어떤 구조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거나 감소시키는지 등을 분석해 미래 도시 설계의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레드뷰트가든은 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늘진 개울가와 건조한 산기슭, 잘 관리된 화단과 자연 상태의 숲이 공존하며 계절 내내 꽃이 이어진다. 벌에게 필수적인 먹이와 물, 둥지 공간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셈이다.

히너스는 “다양한 수분매개자가 다양한 식물을 살리고, 다양한 식물은 다시 다양한 수분매개자를 살린다”며 “이 상호작용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벌이 만드는 거대한 생명의 연결망

벌은 단순히 꿀을 만드는 곤충이 아니다. 연구진은 벌이 도시 생태계 전체를 떠받치는 핵심 존재라고 강조한다.

벌은 꽃꿀을 통해 탄수화물을 얻고, 꽃가루를 통해 단백질과 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 등을 섭취한다. 벌들은 하루 종일 꽃을 오가며 뒷다리나 배 부분의 털에 꽃가루를 묻혀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꽃가루가 다른 꽃으로 전달되며 식물의 번식이 이뤄진다. 이후 씨앗과 열매가 형성되고, 이는 다시 새와 곤충, 포유류 등 다양한 생물의 먹이가 된다.

결국 벌 한 종의 존재는 전체 먹이망(food web)과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히너스는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번성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건강하고 기능하는 생태계 안에 살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한 ‘도시 벌 조사’

하지만 생물다양성을 기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지난 여름 히너스 연구팀과 자원봉사자들은 수개월 동안 벌 채집 작업을 진행했다. 2015년 조사를 이끌었던 유타주립대 생물학자 조 윌슨(Joe Wilson)도 이번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팀은 5월부터 9월까지 서로 다른 서식 환경을 대표하는 지역을 나눠 벌을 채집했다. 벌채집망으로 벌을 포획한 뒤 플라스틱 용기에 보관하고, 발견 날짜와 위치, 벌이 앉아 있던 식물 종류 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표본이 분석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벌은 매우 희귀하고, 특정 기후 조건에서만 나타난다. 종 수준까지 정확히 구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히너스는 현재 레드뷰트가든이 벌 다양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과거와 비교해 얼마나 변화했는지는 아직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도시는 사람 중심…벌은 소외돼 왔다”

이번 연구는 도시 공원 설계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도 던진다.

히너스는 대부분 도시 공원이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다고 지적한다. 잔디밭과 큰 그늘나무는 사람에게는 쾌적하지만, 벌에게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벌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충분한 꽃과 둥지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특히 ▲계절 내내 꽃이 피는 토종식물 확대 ▲일부 맨흙 공간 유지 ▲농약 사용 최소화 같은 작은 변화만으로도 도시 생태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국제사회가 강조하는 SDG 15(육상생태계 보전), SDG 11(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SDG 13(기후행동)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생물다양성은 도시의 미래 경쟁력”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는 단순히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 공간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벌과 같은 수분매개자는 식량 시스템과 생태계 유지에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도시 생물다양성 정책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레드뷰트가든 사례는 거대한 자연보호구역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의도적으로 공간을 설계하면 도시 안에서도 생물다양성이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히너스는 “생물다양성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며 “우리가 자연을 위한 작은 공간만 남겨두더라도, 도시는 다시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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