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월 24일, 콜롬비아 북부 해안도시 산타마르타(Santa Marta)에서 세계 에너지 전환의 새로운 분기점이 마련됐다. 석탄·석유·가스 중심의 산업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과학 기반 국제협력체인 ‘글로벌 에너지 전환 과학패널(SPGET, Science Panel for the Global Energy Transition)’이 공식 출범하면서다. 이는 단순한 학술 네트워크가 아니라, 각국 정부가 화석연료 의존 구조를 체계적으로 줄이고 1.5℃ 기후 목표에 부합하는 정책을 설계하도록 지원하는 국제 정책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SPGET의 출범은 2025년 브라질 벨렝(Belém)에서 열린 COP30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시 국제사회는 파리협정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배출 감축’ 수준을 넘어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transition away from fossil fuels)’ 자체를 구체적 정책 프레임으로 제도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했다. SPGET은 이러한 요구를 실행 가능한 과학·정책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탄생했다.
이번 산타마르타 회의는 콜롬비아와 네덜란드가 공동 주도했으며, 브라질 COP30 의장국, 네덜란드 기후정책·녹색성장부, 콜롬비아 환경지속가능개발부가 핵심 후원 세력으로 참여했다. 특히 56개국 이상에서 정부 관계자, 과학자, 경제학자, 시민사회, 원주민 대표들이 참석해 단순한 선언이 아닌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의 국제적 연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시 말해 “언제, 어떤 산업에서, 어떤 속도로 화석연료를 줄일 것인가”를 국가 정책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이다.
이를 위해 SPGET은 세 가지 전략축을 제시했다.
첫째, 국가별 전환 이정표 설정이다. 각국의 경제 구조, 에너지 믹스, 산업 의존도에 따라 석탄발전 감축 시점, 석유 보조금 축소,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과학적으로 제안한다.
둘째, 산업 부문별 세부 로드맵 구축이다. 철강, 시멘트, 운송, 농업 등 고탄소 산업별 감축 경로를 제시해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연계한다.
셋째, 정의로운 전환 원칙이다. 화석연료 산업 축소 과정에서 노동자, 지역사회, 개발도상국 경제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사회적 보호와 재분배 전략을 포함한다.
특히 SPGET은 과학의 ‘접근 가능성(accessibility)’을 강조한다. 복잡한 연구 결과를 일반 정책결정자와 시민사회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 브리프(policy brief), 실행 가이드, 국가 맞춤형 분석 형태로 제공함으로써 과학과 정책 사이의 간극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출범이 갖는 또 다른 의미는 지정학적 변화다. 산유국 중심의 국제 에너지 질서가 흔들리는 가운데, 콜롬비아와 브라질 같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에너지 전환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북반구 선진국 주도의 기후정책 구조에서 벗어나, 남미와 개발도상국이 전환 정의성과 개발권을 동시에 주장하는 새로운 국제정치 구도를 보여준다.
물론 과제도 적지 않다. 화석연료 산업은 여전히 세계 GDP, 고용, 지정학 안보 구조와 깊이 연결돼 있다. 많은 국가들이 에너지 안보와 경제성장을 이유로 급격한 탈화석연료 정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SPGET의 성공 여부는 단순한 과학적 권위가 아니라, 실제 정책 채택과 국제 금융 구조 변화, 그리고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연결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SPGET은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화석연료 이후’를 체계적으로 설계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기후위기가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닌 현재의 경제·안보 위기로 다가온 상황에서, SPGET은 탈탄소 문명의 설계도이자 국가별 행동을 촉진하는 과학적 조정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SPGET의 출범은 단순한 환경 의제가 아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게 지속된 화석연료 문명의 구조적 전환 선언이며, 국제사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감축’에서 ‘체제 전환’으로 이동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산타마르타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실험이 향후 각국의 정책, 투자, 산업 구조를 어떻게 재편할지, 그리고 그것이 1.5℃ 목표를 지키는 실질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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