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 확대를 위해 공공부문이 민간보다 앞장서기로 했다. 수돗물을 페트병에 담아 공급하는 전국 주요 수도사업자들이 2026년부터 재생원료 사용을 대폭 늘린다.
17일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 김성환)는 서울아리수본부 등 병입수돗물 페트병을 생산하는 수도사업자와 '공공부문 수도사업자 재생원료 사용 업무협약'을 서면으로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에 참여한 수도사업자는 서울(아리수), 부산(순수365), 인천(인천하늘수), 대전(It's水), 광주(빛여울수), 경기 평택(PT-water)·의정부(홍복산맑은물Hello), 한국수자원공사(K-water) 등 8곳이다.
이번 협약은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플라스틱 재생원료 사용의무 제도'에 맞춰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하기 위해 마련됐다. 민간 기업에 앞서 공공기관이 재생원료 사용을 확대함으로써 순환경제 사회로의 전환을 앞당기겠다는 취지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연간 5000톤 이상의 페트병을 사용하는 생수·음료 제조사에게 2026년 1월 1일부터 출고량의 10%에 해당하는 재생원료를 사용토록 의무화했다.
2030년까지는 사용의무 대상을 연간 1000톤 이상으로 확대하고, 사용의무율은 30%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페트병의 순환이용률을 점진적으로 높여나갈 방침이다.
재생원료 사용의무 제도는 재활용된 원료가 다시 원래 제품에 투입되는 '닫힌 고리(closed loop)' 순환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핵심 정책이다. 플라스틱 오염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이러한 순환구조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민간 기업에는 10%의 재생원료 사용이 의무화되지만, 이번 협약을 통해 공공부문 수도사업자는 더 높은 목표를 설정했다. 2026년도 병입수돗물 페트병 제조 시 민간 사용의무율 수준인 10%에서 시작해 최대 100%까지 재생원료를 사용할 예정이다.
각 수도사업자는 자체 여건을 고려해 재생원료 사용 비율을 정하되, 사용량을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공공부문이 민간보다 최대 10배 높은 재생원료 사용률을 달성하게 되는 셈이다.
재생원료는 투명 페트병을 수거·선별·재활용하는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각각 재활용 과정과 식품용기 안전성을 인증한 재생원료만 사용할 수 있다.
재생원료 생산 과정은 투명 페트병 배출 및 수거 → 플레이크(세척·분쇄) → 펠릿(칩) → 페트병 제조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 전 과정에서 환경부가 재활용 과정을 인증하고, 식약처가 식품용기로서의 안전성을 확인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재생원료 사용이 용기나 내용물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업계와 1년간 품질 모니터링을 진행했으며, 특별한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2030년까지 재생원료 의무사용에 따른 수요량과 공급가능량을 분석한 결과, 재원료 수급에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도 파악됐다. 이는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의미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 수도사업자 병입수돗물 페트병 외에도 공공부문에서 재생원료 사용이 확산될 수 있도록 선도할 계획이다. 특히 지자체 쓰레기 종량제 봉투 등에도 재생원료 사용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아울러 생활 전반에서 재생원료 사용을 확산하기 위해 현재 사용의무 대상인 페트병 이외 생활가전 등에서도 재생원료 사용이 가능하도록 관련 품목을 지속적으로 찾아낼 예정이다.
현재 페트병에 집중된 재생원료 사용 의무를 생활가전제품, 자동차 내장재, 화장품 용기 등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재생원료 사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혀나갈 계획이다.
김고응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원순환국장은 "재생원료 사용의무 정책은 자원순환의 닫힌 고리를 완성하는 핵심적인 제도"라며 "공공부문에서 재생원료 사용을 선도적으로 확대하여 순환경제 사회로의 전환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무색 페트병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은 재질과 품목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생원료 사용의무 제도는 국제적 추세에 부합하는 정책이다. 유럽연합(EU)은 식품용 페트병 제조 시 2025년까지 재생원료 사용 비중을 25%까지 올리도록 의무화했으며, 이 비중을 2030년까지 30%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플라스틱 포장재에 2025년까지 25%, 2030년까지 50%에 해당하는 재생원료를 사용토록 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글로벌 기준에 맞춰 재생원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번 협약으로 페트병 시장의 재활용 가치사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원료 생산자 및 최종제품 생산자에게 재생원료 사용의무가 부여되면서 재생원료 사용이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페트병 먹는샘물 및 음료류를 제조하는 10여 개 업체가 연간 약 2만 톤의 재생원료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공공부문 수도사업자의 재생원료 사용까지 더해지면 재생원료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재생원료 공급의 안정성 확보, 재생원료 안전성 관리,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방지 등이 주요 과제로 꼽힌다.
특히 수입 제품이 규제에서 제외될 경우 국내 기업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형평성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산업 등 관련 업계에서는 공급 불안정에 대비하기 위해 '재생원료 우선 공급권 제도' 신설 등을 요구하고 있다. 안정적인 재생원료 공급망 구축이 제도 정착의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환경단체에서는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가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를 정당화하는 '면죄부'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감량과 재사용을 우선하고, 재생원료 사용은 보완적 수단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협약은 2026년 재생원료 사용의무제 시행을 앞두고 공공부문이 먼저 모범을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이 민간 부문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