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서부 참나무 숲에 주로 서식하는 딱정벌레의 수식어는 ‘악마의 철갑'이다. 균류를 먹고 사는 이 투박한 딱정벌레에 이처럼 강력한 닉네임이 붙은 이유는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지만 장갑차처럼 단단한 키틴질 껍질의 겉날개로 자신을 지키기 때문이다.
천적에 들키면 돌멩이 흉내를 내며 죽은 척하는데 새가 부리를 쪼는 것은 물론 사람이 밟거나 심지어 자동차가 바퀴로 깔고 지나가도 끄떡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이 딱정벌레를 채집한 곤충학자가 핀을 꽂으려다 핀이 휘는 바람에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날개가 없는 대신 날개덮개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한 덕분에 이 딱정벌레는 엄청난 외력에도 잘 견뎌낸다. 학계에선 이러한 강인함이 두 개의 철갑과도 같은 겉날개 사이의 봉합선이 맞물리는 독특한 방식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연구진이 바로 이 철갑 딱정벌레의 겉날개 구조를 모사해 몸에서 녹으면서도 높은 강도와 유연성을 지닌 새로운 개념의 혈관 스텐트 개발에 성공했다. 생체 삽입형 의료기기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 가능성을 키운 것이다.
전북대 생체재료&메카노 바이올로지 연구실 서일원 박사(기계설계공학부 박사후연구원)와 김진우 박사(바이오나노시스템공학과)는 딱정벌레를 모사한 생체 분해성 마그네슘 합금 기반의 혁신적인 스텐트 구조를 개발했다고 10일 밝혔다.
스텐트는 관상동맥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고위험 의료기기다. 기존 금속 스텐트는 낮은 유연성과 구조적 약점으로 인해 혈관 손상이나 부작용 위험이 크고 체내에 영구적으로 남는 문제가 있다.
과학계에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 분해되는 마그네슘 합금 스텐트 개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기계적 물성과 유연성이 낮아 굴곡진 혈관 조직에서 구조적 파손, 또는 일부 부품의 분리로 인한 부작용 위험이 여전히 존재한다.
전북대 연구팀은 '악마의 철갑'으로 불리는 딱정벌레의 겉날개 관절 구조에 주목했다.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단단한 키틴질 껍질과 1대 1.8의 황금 비율로 배열된 독특한 겉날개 구조를 지녀 높은 강도와 유연성을 동시에 지니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연구팀은 이를 모방해 스텐트 설계에 적용하고, 유한요소 해석을 통해 기존 스텐트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하는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새로운 스텐트는 기존 제품에 비해 응력 집중이 최대 57% 감소하고, 혈류를 균일하게 분산시켜 혈관 내 압력과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었다. 자연을 모사하는 이른바 청색기술을 활용해 생체 삽입형 의료기기 설계 분야에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연구팀은 향후 전북대가 보유한 중재적 메카노바이오기술 융합연구센터와 협력해 혁신 의료기기의 비임상 실증 연구를 이어갈 예정이다. 연구팀은 장차 이 기술은 생체 역학적 특성이 우수한 다양한 중재 의료기기 설계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박찬희 교수 지도로 진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금속공학 분야 세계 최고 학술지인 ‘저널 오브 마그네슘 앤 얼로이즈(Journal of Magnesium and Alloys)’ 온라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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