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년 전부터 살아온 신비로운 심해상어가 화장품 산업의 수요 때문에 멸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밝은 녹색 눈과 길쭉한 체형으로 알려진 걸퍼상어(gulper shark)는 전 세계 200~1500m 심해에 서식하지만, 최근 개체수 급감으로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에 따르면, 걸퍼상어의 간유(肝油)는 보습·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스쿠알렌(squalene) 함량이 70% 이상으로 높아, 화장품·선크림·면도용 크림은 물론 니코틴 패치·치질 연고에까지 널리 사용돼 왔다. 현재 걸퍼상어의 4분의 3이 멸종위기에 해당한다.
CITES 첫 ‘심해상어 규제’ 논의… “국제거래 관리가 생존의 분수령”
오는 11월 24일부터 12월 5일까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리는 제20차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협약(CITES) COP에서, 회원국들은 걸퍼상어를 부속서 Ⅱ(Appendix II)에 등재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부속서 II에 오르면 상업적 거래가 금지되지는 않지만 국제거래 규제 및 지속가능성 평가 의무가 적용돼 모니터링이 강화된다. 현재 CITES에는 145종 이상의 상어·가오리가 등재돼 있지만, 심해상어가 포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해어류 남획 심각… 걸퍼상어는 80% 이상 개체수 감소
심해어는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었지만, 얕은 연안 어장의 고갈과 기술 발전으로 심해어 남획이 급증하고 있다.
2024년 Science는 521종의 심해상어·가오리를 분석한 결과, 위기종의 3분의 2가 간유 제품에 사용되었으며, 걸퍼상어는 지역에 따라 80% 이상 개체수 감소가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걸퍼상어는 긴 수명, 늦은 성숙, 매우 느린 번식 속도를 가진 종으로, 개체군 감소 이후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덤 걸퍼상어(dumb gulper shark)는 호주에서 과도한 남획으로 붕괴했으며, 기존 개체수의 25%를 회복하는 데 무려 86년이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IFAW 정책국장 매트 콜리스(Matt Collis)는 “이런 급격한 감소는 지난 20~30년 사이 벌어진 일”이라며 “심해어를 포획하는 어업 기술의 발달과 간유 시장의 확대가 결합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스쿠알렌 시장은 연 1억 5000만 달러… 상어 3000마리 = 스쿠알렌 1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 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세계 스쿠알렌 시장 규모는 1억 5000만 달러에 달한다. 현재 약 80%가 식물성(주로 올리브유)에서 추출되지만, 스쿠알렌 1톤 생산에 상어 3000마리가 필요해 상어 포획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2015년 BLOOM의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72개 보습 크림 중 20%가 상어 유래 스쿠알렌을 사용, 특히 아시아 브랜드 비중이 높았다.
일부 기업은 보다 적극적이다. 바이오센스(Biossance)는 2016년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사탕수수 기반 바이오 스쿠알렌을 사용하며 “식물성 스쿠알렌이 상어의 것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국제규제”… 산업계도 변화 촉구
콜리스 국장은 브랜드 투명성 강화도 필요하지만, 가장 실효성 있는 수단은 국제 거버넌스라고 강조한다. “CITES는 법적 강제력을 갖춘 몇 안 되는 국제협약이다. 규정을 어기면 국가 간 거래 정지까지 가능하다”
바이오센스 역시 성명을 통해 “화장품 원료 채취 대상 종에 대한 국제규제는 해양생물다양성 보호의 필수 단계”라고 밝히며 CITES 등재를 지지했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는 그동안의 반복된 경고를 반영해, 걸퍼상어의 국제거래 규제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국가들의 합의가 주목된다.
일부 국가는 다시 ‘걸퍼상어 어업 재개’… 국제 규제 없이는 회복 어려워
몰디브는 2010년 걸퍼상어 개체수가 21년간 97% 급감하자 포획을 전면 금지했지만, 최근 어업 재개 조치를 승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별 규제만으로는 국제 무역을 통제하기 어렵다며 CITES 부속서 II 등재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이번 CITES 회의가 걸퍼상어를 멸종의 길에서 구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멸종위기 상어] “화장품 때문에 남획되는 심해상어”
스쿠알렌 채취 위해 75% 이상 멸종위기… CITES, 첫 심해상어 국제규제 논의 심해어류 남획 심각… 걸퍼상어는 80% 이상 개체수 감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