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스모그가 1400만 도시를 집어삼켰다. 파키스탄 제2의 도시 라호르는 올해 11월에도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대기질지수(AQI)가 수시로 500을 넘어 '위험' 수준에 머물고, 지난달에는 사상 최고치인 1900을 기록해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미국 환경보호청이 300 이상을 '건강에 치명적'으로 분류하는 것을 감안하면, 파키스탄의 대기 상황은 재난 수준을 넘어섰다.
2024년 세계대기질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연평균 초미세먼지(PM2.5) 농도 73.7㎍/㎥를 기록하며 차드, 방글라데시에 이어 세계 3위 오염국에 올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안전하다고 권고하는 기준(5㎍/㎥)의 14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전국 주요 도시 12곳에서 WHO 기준의 10배 이상 오염 수준이 연중 내내 지속되고 있어, 국민 대다수가 유독한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는 셈이다.
이 독성 하늘은 해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추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파키스탄에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는 14만 명을 넘어섰다. 2024년 세계공기상태 보고서는 2021년 한 해 동안 파키스탄에서 대기오염 관련 사망자가 25만6000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실내 공기오염까지 포함하면 매년 급성 호흡기 감염 4000만 건과 2만8000명의 추가 사망이 발생한다.
시카고대학교 에너지정책연구소가 발표한 대기질수명지수(AQLI)에 따르면 대기오염은 파키스탄 국민의 평균 수명을 3.9년 단축시키고 있다. 라호르, 페샤와르, 구즈란왈라, 라왈핀디 등 오염이 극심한 도시에서는 그 영향이 7년에 달한다. 이는 심혈관 질환에 이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두 번째로 심각한 요인으로 꼽힌다.
가장 취약한 피해자는 어린이다. 유니세프는 지난 11월 성명을 통해 펀자브주에서만 5세 미만 어린이 1100만 명 이상이 유독성 스모그에 노출됐다고 경고했다. 이 기간 라호르와 물탄의 대기오염 수치가 WHO 기준의 100배를 넘어서면서 수백 명의 어린이가 호흡기 질환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유니세프 파키스탄 대표 압둘라 파딜은 "파키스탄 5세 미만 어린이 사망 원인의 약 12%가 대기오염과 관련돼 있었는데, 올해처럼 오염 농도가 두세 배로 치솟으면 그 영향은 파괴적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모그 시즌이 되면 펀자브주의 모든 학교는 휴교에 들어간다. 올해도 11월 중순까지 전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고, 1600만 명 학생의 수업이 중단됐다. 2620만 명의 아이들이 이미 학교에 가지 못하는 교육 비상사태 속에서 추가적인 학습 손실은 치명적이다. 당국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근로자 절반에게 재택근무를 명령하는 '녹색 봉쇄' 조치를 시행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대기오염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겨울철 농작물 잔여물 소각, 구식 벽돌 가마, 급증하는 차량 배기가스, 산업시설 배출, 무분별한 건설 먼지가 뒤엉킨다. 여기에 국경을 맞댄 인도에서 넘어오는 오염 물질까지 가세한다. 겨울철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오염 물질을 지표면 가까이 가둬두는 '기온역전 현상'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이어지는 스모그 시즌은 이제 파키스탄의 '5번째 계절'로 불린다.
경제적 타격도 막대하다. 세계은행은 대기오염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과 생산성 손실이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약 6.5%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노동자의 업무 효율 저하, 질병으로 인한 결근 증가, 인지 기능 약화가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스모그는 햇빛을 차단하고 농작물에 유해 물질을 침착시켜 수확량을 줄이며 식량 안보까지 위협한다.
불평등도 심화하고 있다. 여성과 어린이는 실내 공기오염의 불균형한 피해를 떠안는다. 농촌 지역 여성들은 여전히 장작과 바이오매스 연료로 조리를 하며 유해 물질에 노출되고, 저소득층 아이들은 교통량이 많은 지역의 학교에 다니며 더 많은 오염에 시달린다. 최근 연구들은 대기오염이 여성의 생식 건강과 태아 발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한다.
펀자브주 정부는 '스모그 프리 펀자브' 캠페인을 벌이며 벽돌 가마 단속, 차량 배출가스 검사, 도로 물뿌리기, 드론을 활용한 불법 소각 감시 등 다각적인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11월 17일 기준 라호르의 AQI가 291로 떨어져 인도 델리(647)보다 낮아졌다는 발표도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임시방편적 조치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인권법에 따라 파키스탄 정부는 국민의 생명권, 건강권,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와 석탄발전소 확대 중단을 통해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2030년까지 신규 판매 차량의 30%를 전기·하이브리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이행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숨 쉬는 것조차 생존의 문제가 된 파키스탄. 전문가들은 스모그가 최소 내년 1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재생에너지 전환, 대중교통 확충, 산업 배출 규제 강화, 농업 관행 개선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독성 하늘 아래 수백만 명의 삶이 계속해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의 대기오염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인권과 생존의 문제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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