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의 조세회피처 관련 문건이 유출됨에 따라 각국 유명인들의 역외탈세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미국의 탐사보도 시민단체 공공청렴센터 산하의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지난 10월 3일 '판도라 페이퍼스'란 이름으로 1,190만 건의 역외탈세 의혹 관련 문서를 공개했다. 요지는 전 세계 지도자와 부호 등이 조세회피처에 거액을 숨겨놓고 탈세와 불법을 일삼았다는 내용이다.
이번 문건은 세계 도처에서 역외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대형 로펌 14개의 문서를 입수한 것으로, 분량은 3테라 바이트 정도다. 문건이 다루는 광범위함은 2016년 공개됐던 2.6테라 바이트 분량의 '파나마 페이퍼스'를 웃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판도라 페이퍼스 프로젝트에는 우리나라 비영리 독립 언론 뉴스타파를 비롯해, 117개국 159개 미디어에서 약 600명의 언론인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ICIJ는 앞서 2016년 파나마 공화국에 소재한 로펌 모색 폰세카가 보유한 약 1,150만 건의 비밀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라고 불리는 이 문건에는 각국 정부 고위관료, 유명인, 부유층이 어떻게 세무조사를 피해 재산을 은닉해 왔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이때의 폭로로 당시 아이슬란드 총리가 사임했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불법 탈세를 한 인물에 대한 고강도 수사와 제재가 가해졌다.
이번에 공개된 '판도라 페이퍼스'에는 세계 각국 전‧현직 지도자 35명, 고위 공직자 336명, 포브스지 등록 억만장자 90여 명의 해외 계좌 및 거래 내역이 수록돼 있다. 여기에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세바스티안 파녜라 칠레 대통령,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 등도 포함된다.
압둘라 2세는 1995년부터 2017년까지 적어도 36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이 회사명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약 1억 600만 달러 규모의 호화주택 14개를 구매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880만 달러 규모의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을 보유한 버진아일랜드 업체를 인수해 2017년 건물주가 됐는데, 이 거래를 통해 40만 달러 이상의 세금을 절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문건이 공개된 이들 중 상당수가 언론에서 반부패나 개혁 등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는데, 이번 폭로로 이들의 위선적인 가면이 벗겨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실 역외금융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케이맨 제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파나마 등은 주요 역외금융센터인데, 이들 지역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거나 매우 낮은 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해외 기업 및 금융기관이 세금 절감 목적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불법인 탈세와는 다른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판도라 페이퍼스가 공개된 이후 당사자로 지목되거나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인사들 상당수가 "불법성은 없다", "정상적인 거래였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오히려 허위 정보에 대해 비난 성명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단순한 절세 차원이 아닌, 애초에 탈세와 자금세탁을 목적으로 역외금융을 악용하는 경우이다.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해외로 자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의 '역외탈세'가 바로 이것인데,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기 때문에 단순히 윤리적 문제를 넘어 개별국가의 세입세출 정책을 교란하고, 전 세계 자본투자 흐름을 왜곡시키는 등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단순 의혹을 섣불리 불법이라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이다. 이번에 불거진 역외탈세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는 쉽지 않을 전망이며, 각국 검찰 수사 등 사태의 추이를 당분간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댓글
0